'흔적의 경험'

동양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행위에 의한 체득이다.

실천하는 학문인 동양철학에서 인간은 행위와 수련을 통해 배움을 말한다.

모든 행위에는 시간이 담기고, 흔적을 남긴다.

우리의 생과 사 안에서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배움과 성찰을 통해 나아간다.

흔적은 과정들의 기록이다.

우리는 흔적이라는 키워드를 공간에 대입하여 또 다른 경험과 성장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라온 아시안 다이닝'은 '공존(共存)의 흔적’ ‘균형의 흔적’, “간소(簡素)의 흔적', '비움(空)의 흔적' '상징(象徵)의 흔적' 의 의미들을 공간에 남겼다.

공간을 구성하고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공존(共存)의 흔적'이라는 큰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시안’ 다이닝의 특성상 전통적인 요소에 대한 큰 비중이나 과도한 집중이 자칫하면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이닝’을 즐기는 다양한 고객의 취향에 맞게 역사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공존하길 바랐다. 이에 동양 건축에서 보이는 형태적, 기능적 요소들을 현대적인 소재와 레이아웃으로 재해석하여 공간을 구성하며 이를 혼재시키고 공존의 흔적을 남겨냈다.

또한 수직적이며 반복되는 구조를 현대적으로 단순화시켜 공간을 정돈하는데 힘썼다.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채택하여 단순하지만 기능적인 구조물을 설계하고 균형 있게 배치하여 간결하지만 명료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였다. 단순하게 정돈된 형태와 군더더기 없는 직선적인 구조를 통해 간소함 즉, 간소(簡素)의 흔적을 나타낸다.

공간의 다양한 구조들은, 시간을 품은 듯한 다양한 소재들을 사용하여 현대적이지만 헤리티지가 담긴 느낌을 주고, 차분한 무채색의 색채 구성과 음향, 그리고 조명의 빛이 심적인 고요함과 비움(空)으로 인도한다. 내부의 기다란 바와 대조되는 넓은 유리 창을 통해 담긴 어두운 하늘 또한 상대적으로 이 고요함과 평온함을 강조하며 비움의 흔적을 담아낸다. 이러한 고요하고 비워진 상태는 음식과 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사이트 특성상, 빌딩의 최상 층에 위치한 공간인 만큼 외부의 경치와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꾸민 외부 테라스 역시 이곳의 핵심 공간 중 하나이다.

수직적 구조의 반복을 통해 강조된 스탠딩 테이블은 어둠이 드리워지며 그 형태가 상쇄되고, 그 하부는 조명을 통해 드러나 바닥과 하늘, 외부(자연)와 내부(건축)가 균형을 맞춰 어우러지는 요소로 표현했다.

외부와 내부를 분리하는 투명한 유리벽은 시각적 연결성을 부여하고, 내부에는 동양 건축에서 사용하는 실내정원의 요소를 차용하여, 그 경계를 흩트리며 전체적 공간의 균형을 맞춰 나갔다.

전체적인 공간의 완성도와 특색을 강조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동양의 심볼리즘, 상징의 흔적을 사용했다. 동양미가 강조된 석상 등을 공간에 담으며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붓다 (Buddha)의 두상에는 음과 양의 이야기를 담고, 내부 조경과 해태상에서는 공간을 지키는 토테미즘적 요소를 담은 것처럼 말이다. 또한, 바(bar) 하단 일부에는 계단식으로 깊어지는 구조 속 부처상을 설치하여, 높은 자(부처)를 발 아래 두어 “이 곳에서 음식과 공간을 영위하는 순간만큼은 신보다 높이” 라는 다소 발칙하지만 재밌는 요소를 담기도 했다.

각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이러한 흔적의 요소를 통해 미적인 부분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이 공간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직접 바라보고, 이용하고, 만져가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흔적의 경험”을 하고, 또 다른 흔적(추억)을 남기길 바란다.